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 이라는 책을 몇일전에 완독했다. 학교폭력, 관계, 청소년기의 가치관 형성을 다룬 이 책은 여러모로 [잘자 푼푼] 의 안티 체제처럼 느껴졌다. 고백 하건데, 나는 더이상 [잘자 푼푼] 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사노 이니오 특유의 음울하고 비뚤어진 세계관이 어릴때 접했을땐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푼푼이 결국 성장을 유보하다 모든것을 잃고 나서 그제서야 성장을 한다는 플롯이 상당히 고자극적인 방식으로 연출이 되는데, 어른이 되고나서 이 작품을 곰곰히 곱씹어보니 나는 이 작품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잘자 푼푼]이 결론적으로 독자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찰을 해보면, "성장"을 유보하는 것을 겁 주고, 관계에 목 매는 것을 겁주고, 사회로 나가지 못하는 것에 겁을 주고 있다. 등장인물을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놓아 이 비극적인 서사를 극대화 한 것으로 보이지만, [잘자 푼푼]을 읽고 나서 독자에게 남는건 결국 삶에 대한 공포이다. 내가 혹시 수동적인 존재이지는 않을까, 푼푼같이 성장을 유보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게끔 설계가 된게 굉장히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등장인물들에게 선택지도 많이 주지도 않았으면서.
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은 잘자 푼푼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많다. [잘자 푼푼]의 아이코와 비슷하게 주인공의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고지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두 인물은 폭력이 정당화되는 세상속에서 청소년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고지마는 자신들이 괴롭힘이나 폭력을 당하는 이유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폭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응이 아닌 의지이자 순수함이라고 믿는다. 고지마와 주인공의 관계는 공유된 고통을 통해 발전한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대를 배신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도 [잘자 푼푼]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하지만 [헤븐]은 주인공은 고지마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고지마처럼 고통에 윤리적인 숭고함을 부여하지도 않고, 모모세처럼 세상이 의미도 정의도 없이 오직 힘의 논리로만 돌아간다는 세계관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본인이 스스로 사시 수술을 결정하면서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 세상은 몹시 아름다웠다고 소회 하면서 작품이 끝나게된다.
나는 이런 점에 있어서 [헤븐]의 결론이 더 마음에 든다. 사랑하는 상대를 잃음으로써 성장한다는 기본 골자는 같지만 [헤븐]은 그럼에도 이 주인공을 묵묵히 지켜본다. 작품은 이 주인공이 내리는 결정을 존중하며 그 끝에 다다랐을 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진다.
삶은 구속이 아니다. 관계도, 꿈도, 심지어 도망치고 싶다는 회피적인 마음도 구속이 아니다. 아픔으로 규정하지 않고 스스로 시작할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 그런 태도를 이번 앨범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